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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방 이상한 앨리스 윤사비나 대표와의 인터뷰.
Q. '문화다방 이상한 앨리스의 대표'로 되어 있는데 이름이 좀 특이하다. 의미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ㄴ 원래는 극단 이상한 앨리스였다. 처음엔 동명의 연극으로 극단을 시작했다. 그 연극 제목 앞에는 'Live theater(라이브 씨어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연극이라고는 하나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음악이나 전시 퍼포먼스 등)들을 라이브로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에 단순히 연극이라는 것만으로는 그 공연을 비롯한 우리가 추구하는 전반적인 공연작업이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체 앞에 극단이 아닌 문화다방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첫 번째 연극인 'Live theater 이상한 앨리스'는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처럼 꿈에서 이상한 나라에 다녀오는 내용이었다.
그 연극을 하면서 과연 '이상한 것'이 무엇인가의 고민을 해보았다. 평소에 사람들은 나보고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과연 무엇이 '이상한 것'인가. '세상이 더 이상하지 않나?' 이런 질문을 던지던 와중에 차라리 우리가 이상한 것을 만들어 오는 관객들이 그 공연을 보고 이상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보는 관객 모두가 앨리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상한 앨리스 중에는 여자 앨리스도 있고, 남자 앨리스도 있고, 나 같은 대머리 앨리스도 있는 것이다.
'사비나'란 이름은 가톨릭 세례명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닉네임을 부르던 탱고마니아 세계에서 별명으로 사용해왔다. 그 별명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좋아하고 그 여주인공을 워낙 동경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명인 동시에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Q. 본인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들이 있다. 우선 연기를 전공하여서 연기활동을 하고 있고, 무용이나 전시와 퍼포먼스에다가 작가 연출까지 하고 있다. 가정까지 꾸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소화하는지
ㄴ 소화를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다 조금씩 부족하다. 사람들은 나에게 다양한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나로서는 다 같은 맥락의 일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 유일하게 직업과 동떨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 역시 삶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술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지원금을 받으려 신청할 때 이외엔 나에겐 의미가 없다. 무엇으로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오히려 직접 보고 즐기는 것이냐 영상처럼 다른 도구를 통해서 감상하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춤이냐 연기냐 연출이냐 보다는 공연에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떤 장르가 더 그 공연에 잘 어울리고 메시지를 관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Q. 전방위적 예술가라고 하지만 본인이 출연할 때와 연출작업을 할 때는 그래도 성격이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ㄴ 작업할 때 다른 마인드를 가져야한다. 연출하는 것은 리더가 되는 일이다. 책임감도 막중하고 분주해진다. 하지만 그런 만큼의 즐거움도 있다. 우리극단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다 보니 무용이나 영상을 많이 사용하고 그것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반면에 배우를 하는 것은 훨씬 더 긴장하고 내 역할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하지만 정작 연습을 갈 때는 소풍 가는 느낌이다. 배우는 나에 대해 집중할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 연출할 때는 작품자체보다 작업을 진행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다. 오히려 작품에 대해서 신경을 더 못 쓴다고 생각한다.
Q.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공연분야 중에 가장 애착을 느끼고 또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ㄴ 굳이 장르를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누가 묻는다면 나는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연극이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개념만은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연극은 음악회가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연극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내가 생각해온 이러한 폭넓은 개념을 실현해보고자 이외수 선생님의 '벽오금학도'를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선생님의 작품이 공식적으로 연극화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신작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며 작품의 규모를 키워갈 것을 고려하여 시간을 두고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그래서 처음 공연은 들려주는 연극이라는 부제를 달고 낭독공연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낭독공연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가지 기법들이 실험적으로 사용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눈'이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공연의 중요한 화두이다. 그래서 아날로그화된 증강현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블루스크린과 미니어처를 사용하는 착시 기법이 주요 관람포인트가 될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과 협업하여 슈도 홀로그램이라는 드론을 사용하는 새로운 무대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내 사용이 불가능하여 야외공연을 할 때 선보이고자 한다.
▲ 윤사비나 공연 모습 |
Q. 이외수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서 말해 달라. 어떻게 이 작품을 만드는 것에 욕심을 내게 되었고 선생님께서도 공연을 허락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ㄴ 이 작품의 발간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때 읽었던 환상적인 느낌을 잊지 못하여, 이후 나이 들어감에 따라 몇 번을 반복하여 읽다가 고교, 대학 시절 연극을 접하면서부터는 언젠가는 꼭 무대에 올리겠다는 계획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대작으로 만들어야 구현이 가능한 소설이었기에 선뜻 제작에 대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저런 공연작업에 대한 개인적인 노하우가 쌓아서 갔고, 특히 광주과학기술원 내 무대기술 연구소라는 곳을 알게 되어 본격적인 무대 구성안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이외수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했으며, 저작권협의에 대한 경험도 없었기에 다시 고민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무작정 선생님께 편지를 보낸 것이다. 선생님은 단번에 화천으로 오라는 답을 주셨고, 첫 만남에 아무 조건 없이 공연제작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후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감성문학교실에서 새로운 제자들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거기에 지원, 선생님의 정식 제자가 되어 지금까지 일 년 넘도록 한 달에 한 번씩 화천 감성마을에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고 있다.
Q. 벽오금학도의 간단한 줄거리와 공연을 제작하면서 추구하고자 하는 연출적인 방향이 있다면
ㄴ 때는 한국 전쟁 이후, 홀로 자신을 돌보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한 아홉 살 강은백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산다는 동네 무영강가에 갔다가 실족하여 오학동이라는 신선의 세계에 다녀오게 된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인간세계로 돌아온 은백은, 신선으로부터 한 장의 학 그림을 받아, 그림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은백은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렸고,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그림으로 들어가게 도와줄 이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그 이후는 이야기는 공연장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추구하는 연출방향은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대에서 환상의 세계는 의식의 변함이다. 그래서 아날로그화된 VR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기술력보다 중요한 것은 환상의 세계를 그려낼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공연은 감동 후불제로 운영한다.
Q. 본인이 공연예술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근본적인 성취감은 무엇인가
ㄴ 어떤 분이 나의 예술활동을 보고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어쨌든 공연예술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하는 도구다. 세상의 많은 혼탁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질하였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 같다. 적어도 연극은 그런 마인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연극이나 문화예술을 많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지금보다는 덜 괴롭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 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인 것 같다.
Q. 최근 문제 되고 있는 문화계블랙리스트문제나 검열사태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말해달라
ㄴ 과연 어느 시대의 이야기인가 의심이 될 때가 많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사회 분위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이러한 세상에서 예술가들이 하는 일은 항상 똑같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세상을 비추어 왔다.
다만 그 방식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권력가들은 우리의 의지를 가로막으려 할 것이다. 그럴 땐 또 다른 장소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마음을 비쳐낼 수 있는 거울 같은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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